지난 수원에서의 녹화와는 달리 주변이 많이 조용하다. 스태프들의 표정도 많이 차분해져 있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고,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느슨해져 있지만, 이곳은 다르다.
파티션 격리를 철저히 해 놓았고, 현장에 있는 그 누구도 마스크를 벗은 사람은 없다.
최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사내에서 확진자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담당 PD와 크로우 두 명이 세트 위에 앉아 있었다.
슬레이트가 "탁"하고 쳐졌고, 메인 캠코더에 빨간 불빛이 들어왔다.
PD : 안녕하세요. 이렇게 또 마주앉을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크로우 : 안녕하세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스태프들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박수를 보냈다.
PD : 네. 오늘은 총 세 개의 파트로 마무리된 "이스포츠 라이즈 어게인" 다큐멘터리의 제작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그동안 못다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제작 기간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겠는데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요.
크로우 : 네. 12월에 마지막 편이 방송될 예정이니까, 6년 8개월이나 걸렸네요. 첫 번째 이유로는 4부작에 담기 버거운 매우 많은 양의 촬영량이 문제였습니다. 실제 직관을 3년에 걸쳐서 했었지만, 대충 한 두장 찍고 마는 그 정도가 아니었거든요. 한 경기 한 경기당 적게는 30컷 많게는 50~60컷의 분량이 나왔기 때문에, 3년 동안의 기록을, 에필로그를 빼고 3편의 분량에 압축해 담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내부 회의를 거쳐서 2016년 한 해의 기록만 압축해서 담기로 하고, 나머지 기록들은 차후에 편성될 후속 프로그램 "직관기행"에서 하나하나씩 풀어나가기로 한 것이죠.
PD : 네. 분량에 대한 이야기였고요. 다음으로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요.
크로우 : 음... 저희 내부적 문제입니다만, 사옥을 자주 옮겼고 그때마다 크나큰 진통이 뒤따른 것이 문제였습니다. 서울에서 시작해서 수원, 그리고 아산을 거쳐 평택. 수도권에 있을 때 저희가 문제를 많이 겪었습니다. 주변 소음이 매우 심각한데다가, 하필 인근 주민이 방송국이 시끄럽다고 민원을 계속 넣고, 뭐 폭력을 휘두르고 욕하고 소리지르고.... 휴우, 말도 못했습니다. 특히 수원에서는 폭도들이 들이닥쳐서 방송국 여기저기를 다 때려 부수고 불을 지르고 난리를 쳤었죠.
PD : 아니 무슨 쌍팔년도 세대 언론탄압입니까? 저희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이런 취급을 받는건지... 이건 인권위에 제소하여도 답이 안 나오는 상황입니다. 정말.....어이가 없네요.
크로우 : ........ 세상에는 의외로 정신 나간 사람 꽤 많습니다. 하필 잘못 걸린 거죠. 두 번 다시는 수원시에서 떡 하나 줘도 안 집어 먹을 겁니다. 결국엔, 제 불찰입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크로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PD : 괜찮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다큐멘터리가 순조롭게 제작될 리는 없었겠지요. 그리고 또 다른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죠?
크로우 : 네. 그렇습니다. 2019년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입니다.
PD : 코로나19. 별 거 아니다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제작진 입장에서는 매우 큰 타격이었습니다.
크로우 : 네. 맞습니다. 사내 직원이 총 100명도 안 되는 소규모 방송사인데, 돌림병처럼 계속 이 사람 확진되고 저 사람 확진되고.... 그런 악순환이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확진되면, 방송국 운영과 프로그램 제작에 큰 차질이 생기는게 저희 Shinecast의 현실입니다. 변명이라고 뭐라 하실 분도 계시겠습니다마는,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당초 3년 만에 마무리될 게 확실해 보였던 이 다큐멘터리가 결국 6년이 넘는 세월을 거친 것입니다.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작진들은 모두 엄숙해졌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PD : 네. 외부적인 요인들이 하필 복합적으로 맞물려서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임직원 모두에게 가시밭길이 되고 만 것인데요. 차마 두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네요....
크로우 : 다행스럽게도 올해 겨울에 이 다큐멘터리를 매듭짓게 되었습니다.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죄드리고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PD : 저 또한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번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PD : 자, 이제는 주제를 바꿔서, 이번 다큐멘터리가 시청자에게 가져다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크로우 : 네. 그렇습니다. "이스포츠 라이즈 어게인"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 침체되었던 이스포츠를 어떻게 되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 브루드 워"와 "스타크래프트 2"라는 종목을 통해서, 2016년에 재부흥한 이스포츠의 현황을 살펴봤구요. 빛과 그림자, 가리워진 부정적인 부분들에 대해서도 짚어 봤었습니다. 저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번 다큐멘터리가 시청자에게 전해 주는 해답은 없다고 봅니다. 대신에 이스포츠 팬들이 그 답을 직접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가 적절한 관심과 사랑이고, 또 어디까지가 집착과 부당한 행동인지는 팬들이 더 잘 알 것이라고 봅니다.
PD : "열린 결말" 이라는 뜻이겠는데요. 어찌 보면 가장 큰 변수는 코로나19 아닐까요?
크로우 : 맞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될 당시에는 아예 무관중으로 리그가 계속되었으니까요. 지금은 그나마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관중 입장을 허용합니다만, 상황이 언제 또 어떻게 변할지는 모릅니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서는 직접 현장을 찾으시는 것보다는 집에서 경기를 관전하시는 게 더 안전하다고 봅니다.
PD : 네. 그렇습니다. 자, 그러면 저희가 후속으로 준비한 프로그램 "직관기행"에 대하여 설명해 주시죠.
크로우 : 네. "직관기행"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제가 다녀왔던 이스포츠 직관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한 보따리 한 보따리씩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그런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피소드가 대략 100화 안쪽으로 나올 것 같구요. 이번 4부작 다큐에 담지 못한 일부 내용들도 하나하나 풀어 내겠습니다. 오래된 기록이긴 하지만, "아카이브"라고 생각하고 봐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23년 상반기에는 휴식기를 좀 가지려고 하구요. 2023년 하반기 또는 2024년 상반기에 방송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PD : 마지막으로 시청자 분들께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해 주시죠.
크로우 : 여러분, 육체적 건강과 심리적 건강을 최우선으로 두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살기 힘들어지면서, 전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까지 휩쓸고 있습니다. "이스포츠 얘기하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하실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게 썩 좋지는 않습니다. 적절한 환경이 갖추어져야 이스포츠도 그에 맞게 재부흥할 수 있는 것인데, 현재 상황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건강하게 스스로를 잘 보호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건강하게 여러분을 한 분 한 분 만나뵐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겠습니다.